5-10년차.
AI 풀어준 회사에서, 가장 먼저 자리를 잃는 직급이다.
처음 그 패턴을 봤을 땐 “운이 안 좋은 한 사람이었겠지” 했다. 그런데 같은 모양이 다른 회사에서, 다른 직군에서, 똑같이 1년 안에 반복되는 걸 봤다.
AI 시대 시니어이건 사고가 아니라 구조다. 그리고 우리가 본 어떤 직장의 변화 패턴보다도 빠르게, 그리고 조용히 일어난다.
왜 신입이 아니라 그 위 층이 사라지는가
(2)편에서 AI 풀어준 회사에서 신입이 시니어를 추월하는 6개월 패턴을 봤다. 그 다음 분기, 분기 두 개가 지나면서 일어나는 일이 이 글이다.
직관과 반대다. 흔한 예측은 “AI가 신입을 대체한다” 였다. 실제로 일어나는 건 정반대다 — AI에 잘 적응한 신입이 자기 일을 키우고, 그 옆에 있는 AI에 적응 못 한 5-10년차가 자리를 잃는다.
이유는 명확하다. 5-10년차의 가치는 “누가 어떤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”이었다. 정보 비대칭. 경험으로 축적된 패턴. 이게 회사가 그 사람에게 지급하는 프리미엄이었다.
AI가 그 비대칭의 80%를 평준화한다. 시니어 IC의 진짜 가치도 깎이고, 신입을 안내해야 할 코칭의 비대칭도 작아진다. 신입은 AI한테 직접 묻는다.
남는 가치는 판단·결정·정치적 균형 — 임원이나 본부장 영역이다. 5-10년차는 그것도 아직 아니고, 신입을 안내해줄 정보 우위도 사라진 중간 지대에 있다.
12개월의 6단계
이 사라지는 과정은 우연이 아니라 반복되는 6단계다. 매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리하면 이렇다.
1단계. 인식 지연 (Month 1-2)
회사가 AI를 풀어준다. 처음엔 “또 새 도구 하나 늘었네” 정도. ChatGPT를 한두 번 켜본다. 단답형 검색에 써본다. “별일 아니네” 하고 닫는다.
이 단계에서 핵심 신호는 — 자기 일의 출발점이 바뀌지 않는다. 일이 들어오면 5년간 해온 방식 그대로 시작한다. AI는 그 방식 옆에 가만히 앉아있는 도구일 뿐.
2단계. 첫 격차 목격 (Month 3)
같은 팀의 주니어가 어떤 결과물을 30분 만에 끝낸다. 자기가 본 적 없는 수준. 어떻게 했는지 묻는다. “클로드한테 시켰어요” 한 마디.
자기를 안심시킨다. “그 분야는 AI랑 잘 맞는 거지 뭐.” / “운 좋은 케이스네.”
지나간다.
3단계. 반복 패턴 인정 (Month 4-5)
비슷한 일이 다른 사람한테서 두세 번 더 일어난다. 일주일에 한두 번. 더 이상 우연이라고 부르기 어렵다.
“한번 진지하게 써봐야겠다” — 처음으로 본인 입에서 나온다.
4단계. 표면적 적응 (Month 5-7)
AI 도구를 자주 켜기 시작한다. ChatGPT 유료로 결제한다. 회의록 요약, 메일 초안 쓰기 같은 명확한 일에 쓴다.
하지만 워크플로의 출발점은 안 바뀐다. 일이 들어오면 여전히 5년치 경험으로 시작하고, “이거 AI로 시작했으면 어땠을까” 라는 질문은 일 끝나고 회고할 때야 떠오른다.
이 단계에서 생산성 향상은 15-20% 정도. 한편 AI 네이티브 주니어는 같은 기간 200-300% 향상 중이다.
5단계. 내부 합리화 (Month 8-10)
분기 평가에서 “임팩트 부족” 류의 피드백이 나오기 시작한다. 본인은 내가 더 복잡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, 평가자는 결과물 비교로 본다.
방어 서사가 만들어진다:
- “AI는 결국 도구야. 진짜 판단은 사람이 한다.”
- “AI 잘 쓴다고 일 잘하는 건 아니다.”
- “내가 하는 일은 AI가 못 한다.”
이 서사 안에 갇히는 순간 — 마지막 적응 기회가 닫힌다.
6단계. 자리 이동 (Month 12+)
다음 조직 개편 또는 승진 사이클에서 결정이 내려진다. 셋 중 하나다.
- 위로 못 올라감 — 다음 직급 승진이 막힘. 5년 더 자기 자리에.
- 옆으로 — “전략 프로젝트” 같은 이름의 비중심 자리. 형식적인 직급 유지, 실질적 영향력 축소.
- 밖으로 — 조직 개편에서 자리 자체가 사라짐.
이때쯤 본인은 “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” 고 느낀다. 회사 입장에선 “이 사람의 마지막 1년을 본 결과” 일 뿐이다.
결론
매일 10만원을 토큰에 쓰면서, 12개월에 걸쳐 가장 자주 본 풍경은 이거다.
AI 풀어준 회사에서 가장 위험한 자리는 신입이 아니다. AI를 도구로만 본 5-10년차다.
이건 비관이 아니라 관찰이다. 실제로 매달, 어떤 회사 안에서 누군가는 1단계에 있고 누군가는 6단계에 있다.
핵심 변수는 단 하나다 — AI를 자기 일의 출발점으로 옮기는지, 아니면 옛 일 옆에 둔 도구로 두는지. 그 결정 하나가 12개월에 걸쳐 직급을 만든다.
이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. 그리고 이 패턴을 가장 빨리 본 회사 안의 5-10년차는 — 6단계가 아니라 다른 시니어가 된다. 다음 (4)편에서 그들의 이야기.
이 시리즈는 매일 토큰 10만원씩 쓰면서 본 것들을 정리한다. 다음 (4)편에서는 — AI 시대에 다시 시니어가 되는 5-10년차의 6가지 행동.